2015.8.6. 목요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신비가가 되고 싶습니까?
-신비체험에 따른 원칙들-
오늘은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입니다. 참 기쁘고 상쾌한 축일입니다.
누구나 원하는 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의 세 제자들과 같은 주님의 변모
신비체험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이기에 누구나 신비가로 불림 받고 있습니다.
비상한 신비가가 아니라 온전한 인간의 원형이 바로 일상의 평범한
신비가입니다.
참 아름답고 매력적인 사람이 하느님을 닮은 신비가입니다.
신비가들은 해바라기꽃을 닮았습니다.
-늘/환히 웃는/해를 닮은
크고/둥근 얼굴/해바라기꽃/형제들
내/사랑하는/해바라기/가족이다
얼마전 수도원 산책중 써놓고 흡족해 했던 글입니다. 해바라기꽃 같은
신비가가 되고 싶습니까?
오늘은 신비체험에 따른 몇가지 중요 원칙에 따른 원칙에 대한 묵상입니다.
이 중요한 몇가지 원칙에 충실할 때 누구나 주님을 닮은 ‘주바라기꽃’
신비가가 될 수 있습니다.
첫째, 주님과 늘 함께 하십시오.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도반道伴이십니다. 자나깨나 주님을 사랑하고 함께
하십시오.
사랑하면 저절로 함께 하기 마련입니다. 주님을 닮는 길입니다.
항구히, 한결같이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늘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 하느님이십니다.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신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잠을 자도 주님과 함께 꿈에도 주님을 뵙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있음 자체가 기쁨이요 행복이요 충만입니다.
주님과 함께 할 때, 아쉬움도 두려움도 부러움도, 배고픔도 목마름도
없습니다.
늘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과 함께 사는 주바라기꽃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들입니다.
늘 주님을 사랑했고 늘 주님도 이들을 사랑하여 결정적 중요한 순간에는
이 세제자와 꼭 함께 하셨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사랑과 신뢰를 한 몸에 받았던 세 제자들입니다.
둘째, 늘 기도하십시오.
기도해서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인간, 이 또한 인간의 정의입니다.
숨쉬듯이, 밥먹듯이 기도해야 합니다.
'끊임없는 분심 잡념들'을 제압하는 것은, 대체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기도'뿐입니다.
존엄한 인간 품위를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은 끊임없는 기도뿐입니다.
우리 삶은 기도의 여정입니다.
모든 영성대가들은 한결같이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비상한 별난 기도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늘 하느님의 현존에
깨어있는 평범한 기도입니다.
분명 오늘 복음의 세제자들은 기도의 대가임이 분명합니다.
주님과 함께 기도중에 주님의 변모를 체험하셨습니다.
셋째, 신비체험은 은총임을 깨달으십시오.
신비체험은 순전히 은총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보다 우리 내적 사정을 잘 아십니다. 이런 주님께 대한
절대적 신뢰가 우선입니다.
주님은 때가 되면 신비체험을 선사하십니다.
오늘 세 제자의 주님의 변모체험이 바로 신비체험은 주님의 선물임을
입증합니다.
세 제자들은 아무도 이런 주님의 변모체험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1독서 다니엘 예언자의 환시 신비체험 역시 주님의 선물임을 입증합니다.
이 환시 신비체험은 그대로 실현되어 우리는 파스카의 주님과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다니엘의 예언은 2000년 그리스도교의 파스카 예수님을 통해서
실현되고 있음을 봅니다.
주님은 우리가 준비가 됐고 때가 됐을 때 신비체험을 선사하십니다.
우리 믿음의 눈만 열리면 온 세상 주님의 선물로 가득한 주님의 신비를
체험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비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항구한 기다림에 인내의 믿음입니다.
넷째, 집착하지 마십시오.
집착은 영혼의 병입니다. 모든 영성대가들은 이탈의 초연함을 권합니다.
하늘에 구름 흘러가듯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이래야
자유롭습니다.
주님의 현존을 즐길 수 있습니다. 신비체험 역시 집착은 금물입니다.
관상기도의 주요 원리이기도 합니다.
신비체험보다 기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순수한 믿음, 순수한 마음,
순수한 사랑입니다.
오늘 베드로의 집착은 우리 인간의 보편적 정서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순수한 원의같지만 주님을 독점하고자 하는 집착이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엉겁결에 나온 말입니다만
본심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참 재미있는 사실이 모세, 엘리야, 예수님 세 분 모두가 승천하신 분들입니다.
여기에 승천하신 두 분을 더 추가한다면 구약 창세기의 에녹과
우리 가톨릭교회의 성모 마리아입니다.
바로 중력의 영향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무집착의 영혼들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다섯째,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대부분이 평범한 일상입니다. 평범한 일상의 광야입니다.
주님을 발견할 때 지금 여기 광야는 낙원이 되지만 발견하지 못하면 그대로 사막으로 남아있습니다.
우선적으로 변해야 할 것은 외적 환경이 아니라 우리 마음입니다. 보는 눈이 바뀌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