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민 신부님 제18회 기도하면 행복해지나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지난 시간에 저희들이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를 풀면서 이제 예수님에 대한 이
야기도 한 번 나눠 봤고요 또 교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 봤습니다. 이제 신학의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풀어가는데 있어서 우리가 오래 전부터 다뤄왔던 신학의 중요한 이야기들을 우리 일상의 이야기들로 풀
어가는 시간들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다루게 될 이야기들은 교회 안에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다양한 주제들, 예
를 들면 기도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성사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친근하게 접하고 있는 고해성사, 성
체성사 이야기, 또 교회가 세상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 특별히 우리 가톨릭 신자
들이 개신교 신자들이나 다른 종교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되는가? 아마 이런 이야기들로 남은 강좌
가 채워질 것 같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기도 이야기를 한 번 풀어볼까 합니다. 오늘 주제는 기도하면 행복해지나요? 이 주제를
한 번 풀어볼까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기도와 기도의 응답에 대한 이야기. 어찌보면 우리 삶의 모든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오늘 이 시간에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무엇을 했죠? 성호경을 그었습니
다. 이 성호경은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완전한 기도죠. 왜냐하면,
◆ 성호경 : 가장 짧고 가장 완벽한 기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신 거룩한 하느님을 부르는 기도 / 아멘 => 우리의 실존적 고백
가슴에 십자가를 긋는 행위 => 그리스도의 십가가가 우리 신앙의 중심임을 고백
우리 신학의 원리 중에서 첫 번째 원리가 뭐였죠? 거룩한 신비이신 삼위일체 하느님. 삼위일체 하느님인
성부, 성자, 성령을 부르고 그 삼위일체 하느님께 향해서 우리가 응답을 드리는 것이죠. 우리의 실존적인
응답. 그래서 아멘이라는 말로 그분을 부르고, 아멘이라는 말로 기도를 합니다.
성호경만큼 우리가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완전한 기도다.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더욱이 성호경을 우리
가슴에 십자가를 긋는 행위잖아요. 십자가를 긋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내가 바로 그리스
도인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도 있지민, 동시에 내 마음 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안고 산다는 그런 의
미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생각해 보셨어요? 우리 가톨릭 교회는 성호를 그을 때 왼쪽 어개에서 오른쪽으로 긋죠. 그
런데 동방 정교회, 동유럽 비쟌틴 전례를 따르는 교회에서는 이 성호경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긋습니다.
그레서 제가 왜 가톨릭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하고, 정교회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할까? 궁금했는데,
때마침 정교회 신부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분게 여쭤 봤더니 너무 걸작의 답을 하시더라고요. 뭐냐 하면은 "아, 신부님, 오른쪽에서 왼쪽
으로 하는 게 더 편한데요." 이러시더라고요. 한 번 해 보세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으면 왼쪽에서 오
른쪽으로 오는 것보다 더 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뭐 이야기 하신 건지, 더 깊은 신학적 의미가 있
는 건지, 전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중요한 거는 우리 가슴에 십가가를 긋는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를 가슴에 품어 안고 산다는 의미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 성호경 : 가톨릭 신자의 특별한 표징 - 성호경 긋기를 주저하지 말자
그래 사실 가톨릭 신자로서 성호경만큼은 우리들의 어떤 아이콘 같은 거 잖아요. 자랑거리고. 그래서 공
공장소에서 성호경 하시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신자분들이 많으신대 좋습니다. 하시면은. 음식점 같은
데서 성호경 한 번 잘 그으시면 혹시 같은 신자라고 반찬이라도 하나 더 줄 수 있고, 또 내가 가톨릭 신자
라는 걸 보여 주는 어떤 표향이 되죠. 그러면 아, 저분도 가톨릭 신자구나라고 이렇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요 여러분들이 열심히 성호경 긋고 딱 식사를 하시면 그 주변에 식사하시는 분들 중에 혹시
천주교 신자가 있는데 성호경 안 하고 식사하시는 분들이 마음의 부끄러움을 가지시는 것. 선교적인 어
떤 의미도 사실 굉장히 있습니다.
요즘은 TV나 이런 데 보면 운동 선수들이 특히 남미의 프로 축구 선수들이 운동장 뒤에 가서 막 이렇게
세 번을 긋잖아요. 이 성호를 그것도 세 번을 긋습니다. 이게 스페인의 오랜 민간 신심인데 세 번 긋고
꼭 오른쪽 엄지 손가락을 입에 이렇게 맞춥니다. 그들의 전통적인 방식이죠.
그래서 십자가를 긋는다는 것은 내 신앙의 표현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의미에서는 선교적인 의미도 있습
니다. 뭐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의 피겨 스케이터인 김연아 선수가 이제 스텔라라는 세례명을 갖고 예쁘게
성호를 긋고 스케이트장을 나가는 거를 보면서 참 마음이 뿌듯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물론 이제 우리들의 신앙 표현이 때로는 우리들의 신념의 표현이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표현이 다른 사
람들의 신앙을 이렇게 배타하거나 혹은 방해하는 표징이 되어서는 물론 안 되겠지요. 그러나 우리들의
신념을 표현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 성호경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천주교 신자들이 됐
으면 좋겠습니다.
◆ 주님의 기도 :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 => 함께 바치기 좋은 기도
기도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오늘 시작 기도를 주님의 기도로 했습니다. 주님의 기도. 제일 우리가 즐겨하
는 기도입니다. 천주교 신자분들이 모이면 제일 먼저 쉽게 다 같이 바칠 수 있는 기도. 어떤 의미에서는
친숙한 기도죠. 그리고 쉽게 따라할 수 있고, 그 주님의 기도에 있는 그 풍요로운 의미는 우리가 말로 표
현할 수 없지만 그 의미를 함축적으로 함께 모여서 기도를 하는데,
그런데 문제는 이 주님의 기도가 친근하고 친숙하다는 의미에는 살짝 뒤집어 보면 그 얘기는 너무 익숙
해서 그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입으로 줄줄줄줄 외우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아쉬운
그런 순간들도 있고, 습관적이 된 기도다 보니까 기도의 참맛을 이렇게 되새기는 맛은 조금 떨어지는 어
떤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문제라고 보고요.
오늘 이 시간은 그래서 기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요. 기도와 관련되어 있는 엄청나게 많은 영성적인
이야기들, 생각들, 우리도 뭐 기도로 사니까 그런 것들을 이제 풀어볼 수 있겠지만 오늘 제가 이 시간에
다루는 것은 좀 신학적인, 우리가 좀 생각해 볼 만한 거리들을 한 번 던져드려 보겠습니다.
◆ 기도는 왜 필요한가?
기도란 무엇이고 왜 기도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다른 종교의 기도와 무엇이 다른가?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도하면 하느님은 다 들어주시는가?
기도의 응답을 어떻게 받을 수 있는가?
그 응답에는 어떤 표징이 있는가?
무엇보다도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왜 필요한가? 이것이 첫 번째고, 기도가 왜 필요하고
기도가 무엇이길래 기도를 왜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고요.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는 기도
는 다른 종교인들이 하는 기도랑 다른 점이 있는가? 그것도 중요하고요. 또 이제 다 아시겠지만 기도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또 내가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다 들어주시는가? 기도의 응답의 문제입
니다. 그리고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떤 표징들이 필요할까? 이런 이야기들이 오늘 대화의 핵심일 거
같습니다.
뭐 여러분들도 각자 기도에 대한 체험이 다 있으시죠? 기도에 대한 이야기들을 아마 여러분들이 강의를
하셔도 충분히 몇 시간을 하실 수 있습니다. 저도 그냥 작지만 제 나름대로 기도 이야기를 조금만 여러분
들께 드리면, 저는 사제이지만 이제 대부분 신부님, 수녀님들이 어차피 교회 안에서 살다 보면 기도가 삶
이 되고 삶이 기도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뭐 신부님들은 미사하시고 신자들하고 모이면 항상 신부님이 먼저 기도해야 되고, 기도가 일상인데 가끔
은 저도 그렇고 대부분의 신부, 수녀님들이 이렇게 휴가를 맡아서 모친 댁을 방문한다거나, 친가를 방문
하게 되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 여기는 집이고, 또 내가 편하니까 좀 이제 그런 사람들의 눈과 상관
없이 좀 편하게 지내고 싶거든요. 그래서 기도도 좀 조금 덜하고 편하게 있고 싶고 그런데,
예, 가끔 저는 어머니 댁에 가게 되면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좀 받습니다. 그게 무슨 꾸지람이냐 하면,
"신부는 요즘 기도는 좀 하나? 기도생활을 좀 하나? 묵주기도는 좀 하나?" 이런 이야기를 하셔요.
어머님이 보시기에는 "아, 이거 신부가 기도 안 하면 큰일나는데"라는 그런 생각도 드시는 모양이고,
또 평생을, 올해 76세신데 평생을 기도 속에서 사셨던 분이기 때문에 뭐 수도자 저리가라 할 정도로
기도를 하시고 열심하신 분들은 그렇잖아요.
뭐 오늘 바쳐야 될 기도의 양이 엄청나잖아요. 그런 당신의 기준으로 생각하면은 걱정이 되시는 거예요.
기도에 대해서. 솔직히 저도 어머니 그런 말씀을 들으면 한 편으로 좀 자존심 상하죠. 그래도 명색이 신
부인데, 기도하는 신부인데 ^^*~~
그런데 또 그 말씀 안에서 내가 가만히 묵상해 보면, "하긴 내가 어머님이 기고하는 거 생각해 보면, 사제
가 이 정도도 못 하고 사는구나!" 저 자신을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기도의 삶을 내가 소홀이 사는 것도 없
지 않았구나. 이런 생각도 좀 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제가 독일에서 사제 서품을 준비하면서 독일 영성지도 신부님하고 서품 준비를 하
다가 이제 기도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과 깊이 침잠하는 묵상기도라는 게 있죠. 우리가 보통 소리내어 하
는 기도는 소리기도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염경기도라고 했죠. 소리기도는 나름대로 함께 바치는 그런
기도인데 이제 조용히 하느님의 현존을 묵상하면서 바치는 기도를 묵상기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냐시오 영성 대피정이라고 해서 사제서품을 준비하는 8일간의 피정에서 혼자 침묵 속에
이제 피정을 하는 겁니다. 침묵을 지키면서 조용히 내 내면의 나를 만나고, 내 안의 하느님의 현존을 만
나는 그 기간에 피정 준비를 하다 보니까 어, 이게 묵상 기도다 그전에 몰랐던 맛이 있는 거예요. 물론
사제가 된다는 기쁨도 컸겠지만,
그래서 영성지도 신부님께 피정이 끝날 때 말씀을 드렸어요. 저의 결심을. 아, 신부님 제가 묵상기도의
참 맛을 봤는데 이 묵상을 앞으로 좀 맛들여서 제가 사제가 되고 나면 매일 1시간씩 꼭 묵상기도를 하겠
습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 신부님이 웃으시면서 아, 그렇게 하시면 좋습니다. 그런데 약속은 하지
마세요. 그러시더라고요. 약속을 하면 그 약속이 나에게 짐이 돼서 자꾸만 그것을 못하는 거에 대해 죄책
감을 느낀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기도하는 즐거움을 즐거움으로 있어야지, 그것이 의무가 돼 버리면
즐거움이 사라진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때는 제가 막 성령으로 가득찼는지 걱정하지 마시라고, 제가 열심히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
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 와서 서품을 받고 첫 미사를 막 다녔죠. 그런데 열심히 다니다 보니까 한 달 정
도 다녔나요? 어느 순간 문득 생각나는 게 제가 한 달 동안 단 30분도 묵상기도를 안 한 겁니다. 그냥 막
일정에 쫓기고, 그냥 원래 미사하고 하는 기도를 하다 보니까, 그 조용히 혼자서 묵상하는 기도의 맛을
잃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그때 제가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 오랫동안 영성지도 하신 신부님이 왜 나에게, 막 사제가
되려는 나에게 그런 충고를 하셨는지에 대해서 깨달음이 좀 오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 기도는 어찌보면
우리가 감성적으로 하느님을 만나는 즐거움, 기도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기
도를 꾸준히 인내롭게 하면서 그것이 나에게 삶의 덕이 되도록 수양하는 방식으로 성장시키지 않으면 기
도의 맛은 사라질 수 있다. 이제 그런 생각이 듭니다.
* 기도를 꾸준히 하여 내 삶의 덕이 되도록 성장시키자
그래서 많은 분들이 기도의 맛을 들여서 열심히 기도하시다가 너무 감성적인 체험에만 몰두를 하시면
자기가 좀 기분이 우울하거나 좀 마음이 안 좋으면 기도를 소홀히 하게 되는 일이 생겨요. 기도는 우리가
하느님께 마음을 여는 내 내적인 준비도 중요하지만 꾸준이 항구하게 내가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그분께
바칠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여러분들 그렇게 하시죠?
◆ 내 기도는 왜 안 들어주실까?
그리고 또 많은 분들이 기도하면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그런 겁니다. 나는 맨날 기도해도 내 기도는
왜 안 들어주실까? 기도의 응답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여러분들 기도를 많이 하시다 보면은 뭐 작게 혹은
크게 응답을 좀 받으실 겁니다. 그 기도의 응답이 또 나를 살게 하기도 하고요.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굉장히 큰 청원거리가 있으면 바치는 기도가 있어요. 묵주의 54일 기도입니다. 그
래서 성모님께 크게 한 번 기대를 하고 바치는데 저도 생각해 보니까 제 인생에서 유학 생활 할 때 두 번
정도 묵주 54일 기도 해 본 거 같애요. 두 번 박에 안 했느냐고 욕하시면 안 됩니다.^^*~~
첫 번째는 독일에 처음 유학 가서 어학 공부를 하는 게 쉬운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시험을 보기 54일 전
쯤 해서 이 묵주 54일 기도를 시작을 했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묵주기도 하면서 시간 맞춰서 열
심히 기도를 했는데, 그 기도의 응답이 들어질까, 들어지지 않을까?라는 그런 반신반의의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날 54일 기도가 끝나는 날, 시험보는 날 아침에 미사를 하는데 그날 미사 복음 말씀이 뭐냐 하면,
성모님의 수태고지 이야기예요. 가브리엘 대천사가 나와서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라는 말씀이 나와요.
그때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는 복음 말씀이 딱 있는 거예요. 그래서 탁 기도를 드리면서 아, 맞다 내가 이
렇게 열심히 청하고 또 내가 열심히 노력했다면 그대로 이루어질거야라는 믿음 속에서 아마 하느님이 채워
주실 것이다. 그런 믿음으로 시험을 보게 됐거든요.
그래서 결국 그 시험 결과가 잘 나와서 합격이 됐어요. 솔직히 고백하지만요, 신학교 입학 한 거보다 더 기
쁘더라고요. ^^*~외국말을 해서 합격했다는 게 너무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야, 이 44일
기도의 응답이 정말 좋은 거구나. 또 한 번 이제 유학 생활을 하다가 좀 내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때가 있었
어요. 그래서 아, 이 문제를 내가 좀 극복해야 되는데 혼자 힘으로는 어렵고, 그래 성모님께 청원을 해 보자.
그러면 그분이 도와주시지 않을까? 해 가지고 또 한 번 54일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 열심한 기도 끝에 나름대로 이게 응답인 거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거 같기도 하고,
반신반의 하게 기도를 마쳤어요. 그리고서 세월이 꽤 지났는데 문득 세월이 지난 다음 생각해 보니까 제
가 그때 기도를 하면서 청원했던 그 내용들이 어느새 이루어져 있더라고요. 너무 신비로운 방법으로. 당
시에는 들어주시지 않은 줄 알았는데 그것이 내가 생각했던 나의 시간의 개념이지, 하느님은 그 기도의
응답의 때를 기다리시고 그거를 어느 순간 이루어지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기도가 참 이렇게 항구하게 바치는 기도, 그리고 정말 열심히 바치는 기도는 하느님께서 어떤
형태로든 응답을 해 주신다는 그런 생각을 좀 해 보게 됐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 이제 기도체험 응답
이야기를 하면 마르코 복음 11장 24절을 한 번 묵상하게 되거든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마르 11,24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 기도 응답의 체험 : 기도의 청원만큼이나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가 청원을 할 때 이미 그 청원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신뢰에 찬 기도를 바찬다면 그것은 우
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거죠. 그래서 그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내 기도의 지향이 정말 올바르고 또
기도의 청원 내용이 나를 영적으로 나를 유익하게 해 주고, 또 그것이 정말 열정과 신뢰에 찬 기도일
때에는 그 기도의 응답이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느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채워진다는 거죠.
* 기도의 응답 : 나의 기도의 지향이 올바르고, 청원 내용이 영적으로 유익하며, 열정과 신뢰에 찬 기도
일 때 기도의 응답은 나의 방식이 아닌, 하느님의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이 바로 기도의 응답을 식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 여러분들도 생각해 보세요. 열심히 기도
하는데 기도가 잘 들어주지 않는다 하면, 네 가지 정도로 성찰을 할 수 있는데요.
◆ 기도 응답을 식별하는 방식
1) 나의 기도 지향이 옳았는가?(로또 당첨,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기도)
2) 나의 기도보다 더 간절한 사람의 기도가 있지는 않았는가?
3) 나의 기도는 믿음에 찬 신뢰의 기도였는가? (들어 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
4) 나의 기도의 청원이 들어질 때가 되지 않은 것은 아닌가?
(하느님이 원하시는 때를 기다리는 인내의 기도)
첫 째, 나의 기도 지향이 올바른가? 혹시라도 내가 너무도 허황된 것을 청했거나 아니면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청원을 한 것은 아닌가? 누가 미운데 그 미운 사람이 어디 가다가 확 자빠졌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내 지향이 올바랐는지 생각해 봐야 되고요.
두 번째, 나의 기도 보다도 더 간절한 사람의 기도가 있지 않았을까? 어찌 보면 내가 청원하고 필요로 하
는 것보다 더 다른 사람의 청원이 필요했다면 그 사람의 기도를 먼저 들어주시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할
수 있고요. 또 한 가지는 정말 나는 신뢰에 찬 기도를 했는가? 내 기도가 정말 진심으로 바치면서 들어주
면 좋고, 안 들어주시면 말고 이런 마음이 아니라 정말 신뢰에 찬 기도를 했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고요.
또 어떤 경우는 내가 바친 기도의 청원이 과연 그것이 들어질 때가 되었는가? 이니면 어쩌면 더 좋은 때를
위해서 좀 더 기다려야 되는데 내가 기다리지 못한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한 번 하신다면 기도의 응
답에 대한 생각을 좀 해 보실 수 있겠습니다.
* 시편에는 하느님에 대한 탄원, 감사, 청원 등의 형태의 아름다운 기도들이 있다
저는 여러분들도 그렇지만 신자생활을 하다 보면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신을 이끌어 주는 중심 기도가
있어요. 특히 중심 기도도 있지만 그 중심 기도 중에 특히 가장 아름다운 기도들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 시편
기도들이예요. 여러분, 시편을 우리가 미사 때 화답송에서 읽지만 평소에도 우리가 시편기도를 자주 바치
는 건 좋습니다. 사제와 수도자들이 바치는 성무일도는 다 시편으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시편은 하느님께
탄원과 감사와 청원의 모든 기도의 형태가 다 들어 있습니다.
◆ 내 인생의 중심기도를 성경에서 찾아보자
그래서 시편기도를 바치시면 좋은데 시편 기도문 중에서 특히 내 마음을 움직여 주는 그런 중심기도가 있
으면 좋겠어요. 저도 사세 서품을 받을 때 저의 사제 생활을 잡아 줄 중심 기도가 뭘까? 서품 상본에 새길
그 성서 구절을 찾을 때 시편 23,1의 잘 아시는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라는 구절을 묵상하면
서 정했거든요. 주님께서 저의 목자시니 제게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 사세수품 상본의 기도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 23,1)
그러니까 세상에 살다 보면 정말 아쉬운 것도 많고, 매달리고 싶은 것도 많고, 집착하는 것도 많은데, 주님
이 저를 이끌어 주신다면 어떤 사람이 나에게 뭐라고 하더라도 그냥 아쉬움 없이 당신께 가겠습니다. 설령
내일 당장 저를 불러 가신다 하더라도 "네!" 하고 대답하고 갈 수 있는 마음, 그게 사제로 살아가는 굉장히
큰 기쁨이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중심기도를 하나 마음에 간직하면 내가 살다 보면 이 기도의 의미를 잃어버릴 때도 있어요. 살다
보면 세상 아쉬운 거 많죠. 사제로 산다고 뭐 그런 거 없겠어요? 그런데 그럴 때 한 번 정도는 이 성서 구절
을 떠 올려면 "아, 그래 내가 뭐 그렇게 아쉬워할 게 있냐? 하느님께 처음 봉헌했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자.
다시 돌아가자." 이런 생각이 드는 거거든요. 그래 그런 기도가 하나 있고요.
★ 박사 학위 논문을 내면서 올린 기도
"주님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시편 127,1)
또 한 가지는 제 인생의 중요한 기도 중에 하나는 시편 127,1에 나와 있는 집을 지어 주시지 않으시면 그
집 짓는 자들의 수고가 다 헛되리로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제가 독일에서 10년 유학 공부를 하면서
사실 유학 생활이 굉장히 쉽지는 않거든요. 외국 말로 논문을 쓰고 공부를 한다는 게. 그 긴 10년이라는
긴 ?제 청춘을 불사르는 시간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때, 학위를 마치고 논문을 제출하는 마지막에 과연
어떤 성경 구절을 이 논문의 마지막에 쓸 것인가? 그걸 고민할 때 기도 중에 이 성서 구절이 딱 마음에 온
거예요.
그래, 제가 아무리 노력했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신 건 주님께서 이루어주셨고, 그분이 집을
지어주시지 않았다면 내가 아무리 노력해 봤어도 결코 이런 완성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기
도문을 제 논문의 제일 첫 번째 줄에 써서 발표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쨌든 우리들이 살면서 청원하고 있는 이런 삶의 여러 가지들이 하느님이 나를 붙잡아 주시는 그런 하
나의 어떤 ?성경 구절을 마음에 새기고 산다면 우리 평신도 분들도 굉장히 중요한 그런 신앙의 체험을 이
끌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예, 이런 제 이야기를 많이 했고요. 그렇다면 이제 제 이야기 속에서 풀어볼 수 있는 우리 기도 이야기를
한 번 좀 풀어볼까 합니다. ?이른바 가톨릭 신자들의 기도생활 보고서라는 이름을 지어 본다면 이제 이런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 가톨릭 신자들의 기도 생활 보고서
기도가 즐거우십니까?
기도 생활이 어렵습니까?
왜 기도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십니까?
여러분들은 기도 생활이 즐거우십니까? 말이 안 나오시죠? ^^*~~ 1초가 지나가면 이제 즐겁지 않으신
것으로 봅니다. ^^*~~ 질문의 의미를 파악을 못 하셨군요. ^^*~ 기도 생활이 즐겁습니까? 혹은 기도
생활이 어렵습니까? 혹은 기도에 대해서 어떤 부담감을 가지십니까? 이런 질문들을 마음에 한 번 던져
보세요. 나는 기도를 어떻게 해 왔을까? 일반적으로 가톨릭 신자들이 일상에서 하는 기도들은 제가 보기
에 한 세 개 정도 꼽을 수 있습니다.
* 아침, 저녁 기도의 생활화 : 하루를 주신 주님께 대한 감사의 기도
첫째는 아침기도, 저녁 기도 매일의 일상 기도죠. 아침에 딱 눈을 떴을 때 내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는가
또 하루를 마치면서 내가 하루를 어떻게 마무리 짓고 있는가?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내게 주신 이 하루
라는 시간을 어떻게 봉헌하고,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 이게 사실 아침, 저녁 기도의 내용입니다.
*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무엇을 생각하는가? : 자신의 인생의 가치와 기준을 보여 준다.
그런데 이제 성직자와 수조자들이 바치는 성무일도서에 끝 기도가 있습니다. 그날의 하루를 마치면서 바
치는 끝 기도가 있는데, 끝 기도의 마지막 기도문이 뭐냐 하면, "주님,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라는 기도입니다.
* 성무일도서의 끝 기도 ?: 주님, 이 밤을 편해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그런 생각 해 보셨나요? 밤에 잠자리에 들 때 편히 쉰다는 거, 편히 쉴 수 있는 것은 굉장한 복입니다.
이른바 요즘 현대인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숙면하지 못하는 거거든요. 너무 걱정러리가 많으니까
내일은 뭐 해야 될까? 오늘 있었던 일, 이런 일, 저런 일, 또 요즘 매체들에 시달릳 보면 우리 머리가 아
제 어려워져 갖고 숙면을 못 취한다고 그래요.
뭐 요즘 건강 보조식품, ?건강 보조 기구들 이런 거 많이 나왔잖아요. 그런데 그런 걸 통해서 숙면을 도와
준다고 그러지만 내 내면의 어떤 평화가 없으면 숙면을 못 해요. 그런데 내 마음을 평화롭게 쉬게 해 주
십시오라는 이 기도는 정말로 아주 큰 청원이면서 중요한 기도죠. ?또 그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해 주십시오. 사실 ?우리가 잠들면서요 당연히 내일 아침에 눈 뜰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데 그거 누가 보장해 줍니까?^^*~~ 보장 안 해줘요. 이대로 눈 감으면 이 세상을 끝낼 수도 있거든요. ?
그런데 우리가 눈을 편안하게 감으면서 하느님께 사실 작은 하루의 죽음을 연습하는 거거든요. 내가 이렇
게 오늘 이 세상을 마친다 하더라도 내가 후회 없이 당신 ?품에 안기게 해 주십시오. 죽음이 나에게 고통스
럽고 불안이 아니라, 거룩한 죽음, 그 거룩한 하느님의 그 거룩한 신비로 내가 받아들여지는 그 기쁨, 그
것을 매일 매일 체험한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기도와 함께 하루를 마무리 지으면 분명히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자동적으로 감사
기도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아, 감사합니다. 딱 일어나자 마자 성호를 긋고 주님, 감사합니다. 요거 5초
도 안 걸리거든요. 그런데 (†)를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삶이 ?달라져요. 그리스도인의 성
공 비법은 거기 있거든요.
내가 아침에 탁 눈을 떴을 때 성호 긋고 하느님, 감사합니다. 내 오늘 너무 어려운 일도 많겠지만 주님께
서 하신 말씀대로 오늘 하루의 걱정은 오늘로 족하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서 살고 내가 부족하다면 당신
께서 채워주십시오라고 기도할 수 있는 거죠. 그런 마음들이 우리에겐 정말 필요하다고 저는 봅니다.
* 기도생활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 :
내가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감사했는지 되돌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때론 살다 보면, 기도생활을 내가 못했다라고 하는 그런 부끄럼들을 많이 갖고 계시는데요. 그러
니까 기도는 내가 정해진 기도문을 읽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내 마음으로 먼저 하느님을 찬양하고, 감사
하는 것이 먼저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기도의 중요성이 마음으로부터 일어나야 되고 그러면서도 마음
의 기도로 완성되는 건 아니죠.
★ 기도문으로 바치는 것이 중요한 이유
ㅡ 개인의 관심을 넘어선 보편적인 기도로 성장하기 위해서
ㅡ 나의 일상의 기도가 성장하는 방법
왜냐하면 내가 바칠 수 있는 이 기도는 언제나 내 주관적인, 내 생각의 기도 외에는 넘어가지를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