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 대성당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3일에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는 파티마의 기적 후 레이리아의 주교가 신빙성을 인정하였고 바티칸의 명으로 성지로 정하였다. 1928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바실리카식 대성당의 건축을 시작하여 1953년 10월에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로사리오 성당이라고도 하는데, 15개의 제단과 1952년 설치된 대형 오르간이 있다. 아일랜드 성체 안치기(聖體安置器)는 아일랜드의 주요 종교작품으로 1949년 기증되었다. 건물 앞 거대한 광장에 성모 마리아 출현 예배당(The Chapel of Apparitions)과 64m 높이의 탑이 있다. 성모마리아가 발현한 장소가 대리석 기둥으로 표시되어 있다. 대성당 묘소에 파티마의 기적을 목격했던 당시 세 사람의 무덤이 있으며 파티마의 기적에 관한 내용가 스테인드글라스로 표현되어 있다. 1982년 5월 파티마 기적을 연구하고 되새기기 위한 바오로 6세 목회센터를 세웠고 2007년 세계에서 4번째 큰 성삼위성당을 지었다.
파티마 성삼위성당
성모마리아성당 내에 있다. 세계에서 4번째로 규모가 큰 성당이다. 2004년 6월 6일 착공하여 2007년 완공하였다. 순례자들이 총공사비 8000만 유로 전액을 기부하였다. 초석은 요한 바오로 2세가 기증했는데, 베드로의 무덤에서 나온 돌로 로마의 성베드로성당 건설될 때 나온 대리석 조각이었으며 이후 건물 완공 즈음에 순례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건물 내부에 보관했다.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달 13일에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난 파티마의 기적 90주년을 기념하여 2007년 10월 12일 성삼위에 봉헌하였다. 수용규모는 8,500석이며 길이 95m, 너비 115m, 높이 20m이다. 설계는 그리스 건축가 알렉산드로스 톰바지스(Alexandros Tombazis)이다. 건물 내부는 비잔틴 양식과 정교회 양식으로 장식하였다.
파티마의 성모님 발현
1917년 5월 13일 성모 마리아가 포르투갈의 파티마에 발현해 했다는 예언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 때인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의 빈촌 파티마에서 성모 마리아가 양을 돌보던 3명의 어린이인 '루치아(당시 나이 10세), 하친타(7세), 프란시스코(9세)' 앞에 나타나 앞으로 5개월 동안 매월 13일 이곳에 나타나 평화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다. 이후 10월 13일까지 출현한 마리아를 목격한 사람은 이 세 어린이 뿐만 아니라 약 7만명가량 되었다고 하는데, 마리아는 세 어린이에게 인류 운명과 직결된 세 가지의 대예언을 전해 주었다고 한다.
파티마에서의 마리아 출현은 1930년 10월 13일 레이리아 주교가 공인을 하였고 이어 로마 교황이 확인하여, 1953년 이곳에 대성당이 건립되었다. 이후 파티마는 프랑스의 루르드와 함께 현대의 2대 성지로 꼽히며, 해마다 수십만 명의 참배객이 모여들고 있다.
한편, 성모 마리아의 예언 가운데 제1의 예언(지옥의 생생한 모습, 1차대전의 종결)과 제2의 예언(2차세계대전의 발발 및 소련의 대두와 몰락)은 1942년에 교회당국에 의해서 공표되었다. 그러나 파티마 제3의 예언 내용은 성모의 고지(告知)로 1960년까지 발표되지 않았다. 계시를 받은 양치기 어린이 중 유일한 생존자인 루치아 수녀(93)는 세 번째 계시도 로마 교황청에 알려줬으나, 역대 교황들은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 바티칸의 비공개 방침은 그동안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주장하는 사교들을 양산했으며, 1981년에는 계시 내용 공개를 요구하는 항공기 납치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교황청은 2000년 5월 그때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마지막 계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암살 기도’였다고 밝혔다. 요한 바오로 2세는 1981년 파티마의 성모 마리아 발현 기념일인 5월 13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총격을 받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났고 이듬해인 1982년 5월 13일 감사 기도차 파티마를 방문했을 때 다시 일어난 스페인 광신도의 암살 기도도 모면한 바 있다.
한편, 당시 세 어린이 중 프란시스코와 하친타는 1919년과 1920년 스페인 독감으로 각각 숨졌으며, 2000년에 성인의 전 단계인 복자로 시복됐다. 루치아의 경우 1929년 수녀가 된 뒤 파티마 인근 카르멜리테 수녀원에서 신앙 생활을 계속하다가 2005년 9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파티마의 계시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제로니모스 수도원

리스본 항구 입구에 서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포르투갈 예술의 백미로 꼽히는 건축물로 1502년에 건설됐다. 15세기, 포르투갈 마누엘 1세의 이름을 따 '마누엘 양식'이라 한 고딕, 이탈리아, 스페인, 플랑드르 디자인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1497년, 탐험가인 바스코 다 가마와 그의 부하들이 인도로 출발하기 전 이곳에 머물렀는데 1499년 그의 귀환을 기념하기 위해 마누엘 1세는 이 자리에 수도원을 지었다. 당시 포르투갈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였지만 건축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게 됐다. 건축비의 상당 부분은 동양에서 수입해 오는 향료에 매긴 세금 5%로 충당했다.
마누엘 1세와 바스코 다 가마의 묘도 이곳에 있다. 회랑이 있는 수도원은 성당과 붙어 있으며 히에로니무스 수도회 수사들이 살고 있다. 20세기의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와 포르투갈의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16세기 루이스 카몽이스 역시 이 회랑의 아케이드 중 하나에 묻혀 있다. 수도원은 1850년 한 차례 증축되었으며 고고학 박물관과 해양 박물관이 함께 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벨렝 탑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정면의 오른쪽에 수도원 입구가 있고, 그 오른쪽에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성인의 생가,성당
안토니오 성인은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성인으로 알려져있다. 안토니오 성인 선종 후 한 사제가 신자의 집에서 값비싼 성경책을 몰래 가져오자 성인이 매일 꿈에 나타나 돌려주라고 했다는 일화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그런 이유에서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이 잃어버린 물건은 물론 배우자감을 찾게 해달라는 지향이 담긴 기도를 성당 출입구에 마련된 편지함에 넣는다고 한다.
성당 마당에 서있는 성인의 동상밑에는 그가 이룬 기적이 기록돼 있다. 소박한 외형과는 달리 성당 내부는 무거운 경건함이 느껴지며 안토니오 성인 생가터는 성당 지하에 위치해 있다. 1755년 대지진으로 무너졌던 것을 복원했다. 이곳에는 안토니오 성인이 탄생한 자리를 기념하는 제대가 있다.
리스본대성당
12세기 이슬람으로부터 국토를 회복한 이후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이다. 1147년 공사를 시작한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다시 지었다. 리스본을 폐허로 만들었던 1755년 대지진 때에도 파괴되지 않은 건물이다. 내부의 바로크 양식의 제단 옆에는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인 성녀 안나의 성소가 있다. 촛대와 예배 당시 사용한 무릎 방석 등이 있다. 제단 뒤에는 회랑으로 연결돼 있으며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