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대성당

바벨 대성당(폴란드어: Katedra Wawelska)이라고도 불리는 바벨 언덕의 성 스타니슬라오와 성 벤체슬라오의 왕립 주교좌 대성당은 폴란드 크라쿠프의 바벨 언덕에 있는 로마 가톨릭교회 성당이다. 9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폴란드의 국가적 명소로서, 역대 폴란드 군주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장소일 뿐만 아니라 크라쿠프 대교구의 대성당이다. 197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 선출되어 즉위한 카롤 보이티와가 1946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에 이곳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다음날인 11월 2일 대성당 지하에서 사제 서품 후 첫 미사를 집전하였다. 그리고 1958년 9월에는 크라쿠프 대교구의 보좌 주교로 이곳에서 서임되기도 하였다. 현재 고딕 양식을 띤 대성당의 형태는 세 번째로 지어진 결과이다. 첫 번째로 지어진 대성당은 11세기에 파괴되었으며, 12세기에 두 번째로 지어진 대성당은 1305년 화재가 발생하여 전소되었다. 현재의 대성당은 14세기에 당시 크라쿠프의 주교였던 난키에르의 지시로 세워진 것이다.
성모승천교회 (크라쿠프 성마리아성당)
크라쿠프는 폴란드의 고도다. 7세기부터 발전한 이 도시는 1038년부터 1596년까지 폴란드 왕국의 수도였고, 전성기였던 14세기에는 학문과 예술이 크게 부흥했다. 2차 세계대전의 참화 속에서 인구의 20%인 600만명을 잃었던 폴란드지만, 이 크라쿠프만은 피해를 입지 않아 1978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곳의 중심지는 구시가지의 리네크 글로브니라는 광장이다.
이 광장에는 14∼15세기에 만들어진 중세풍의 시청 탑과 성 마리아 교회가 들어서 있다. 특히 성 마리아 교회 탑에서는 정시마다 나팔이 울린다. 13세기 타타르인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나팔을 불다 화살에 맞아 죽은 나팔수를 추모하기 위한 것이다.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았던 폴란드인들은 800년이 다 되어가는 과거의 일도 쉽게 잊지 못하고 있다. 광장 주변에는 박물관들이 수없이 많고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다녔던 야기에오 대학도 있는데, 관광객이 가장 즐겨 찾는 곳은 광장의 중앙에 있는 길이 100m나 되는 커다란 직물회관이다. 원래 의복이나 직물의 교역소였지만 지금은 많은 기념품 상점들이 있다. 구시가지 남쪽에는 아름다운 숲길이 있고 그 끝에 바벨 언덕이 있다. 언덕에는 폴란드 왕족의 대관식과 장례가 치러졌다는 바벨 성당, 16세기 초부터 폴란드 역대 왕들이 살던 바벨성이 있어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크라쿠프 대성당은 폴란드 왕실의 전용 성당이었다. 크라쿠프 시민들은 14세기에 세워진 성모 마리아 성당에서 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성당 내진에는 국보로 지정된 제단이 있다. 제단은 조각가 파이트 슈토스의 작품으로, 제작 기간만 무려 12년이나 걸렸다. 높이가 3m나 되는 중앙부의 거대한 조각에는 참피나무를 사용했다. 사도의 품에 쓰러진 성모 마리아와 깊은 슬픔에 잠긴 사도들을 조각한 이 작품은 슈토스의 최고 걸작으로 일컬어진다. 좌우에는 성모와 어린 예수가 다양하게 조각되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이 제단을 일단 밖으로 옮겼으나, 1957년 다시 정성껏 복원되어 원래 자리에 놓였다. 크라쿠프 시민들이 마음으로 의지하는 이 성모 마리아 성당은 폴란드 가톨릭의 요새로 각인되어 왔다.
쿠트나호라 해골성당

이 예배당은 1776년 보헤미안 지역 교구 사제 바클라프 토마셰크가 지었다. 30년 전쟁(1618–1648)과 세 차례의 실레시아 전쟁(1740–1763) 중에 사망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콜레라 전염병, 전염병, 매독, 굶주림으로 죽은 사람들의 집단 무덤이다.
사크리스탄 J. 슈미트, 묘지 발굴자 J. 랭거와 함께 로마 순례 도중 카푸친 공동묘지에서 영감을 받은 아버지 토마셰크는 사상자의 뼈를 모아 18년(1776년~1794년) 안에 성당에 안치했다. 이 작고 바로크 교회의 벽은 3천 개의 두개골로 가득 차 있고, 지하실에는 2만 1천 명의 다른 사람들의 뼈도 있다. 토마셰크 등 예배당을 지은 사람들의 두개골은 1804년 건물 중앙과 제단 위에 놓였다. 안에는 십자가와 천사의 조각 두 개가 들어 있는데, 뼈에는 '죽은 자로부터 귀양'이라고 쓰인 라틴어 비문이 한 개 있다. 3개 언어(폴란드어, 체코어, 독일어)로 이용할 수 있는 교회 내부의 녹음 내용이 예배당의 역사를 설명한다.
성요한대성당
성 요한 대성당(폴란드어: Bazylika archikatedralna św. Jana Chrzciciela)은 폴란드 바르샤바 스타레미아스토에 위치한 대성당이다. 바르샤바에 위치한 3개의 대성당 중 하나로, 유일한 아치 대성당이다.
1944년 바르샤바 봉기 때는 저항 세력과 독일의 군대 사이의 투쟁의 장소였다. 이 시기에 거대한 폭발로 건물의 많은 부분을 파괴했다. 바르샤바 봉기 후 재건되었다. 2012년부터 2015년까지 광범위하게 성당 내부가 수리되었다. 외관, 내관, 예배당, 동상, 묘비, 지하실 등이 해당되었다.
성 플로리아노 대성당
성 플로리아노 대성당의 공식 명칭은 성 미카엘 대천사와 성 플로리아노 순교자 주교좌 성당(폴란드어: Katedra Świętego Michała Archanioła i Świętego Floriana)이며, 폴란드 바르샤바 동쪽의 플로리안스카 삼거리에 있는 역사적인 랜드마크이다.
성 플로리아노 대성당의 첨탑은 높이가 75미터에 달하며 이 탑에 올라가면 프라가 지구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성 플로리아노 대성당은 과거 러시아 제국이 폴란드를 식민 지배했을 때 항거하였던 폴란드인들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성모승천대성당
성모 성당(폴란드어: Bazylika Mariacka, 독일어: St. Marienkirche)은 폴란드 그단스크에 위치한 대성당으로, 과거에는 성모 승천 대성당으로 알려져 있었다. 1379년에 공사를 시작하였으며, 그 부피는 185,000~190,000m³에 달해 현재 세계에서 벽돌조 성당으로는 두번째 또는 세번째로 크다.
1536년부터 1572년까지는 가톨릭 성당과 루터파 개신교 교회로 동시에 사용되었으며, 그 이후부터 1945년까지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루터파 개신교 교회였다. 건물의 길이는 105.5미터, 너비는 66미터이며, 2만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다.
바르샤바 십자가성당 Holy Cross Church, Warsaw
성십자가성당(폴란드어: Bazylika świętego Krziża)는 폴란드 바르샤바에 있는 로마 가톨릭 성당이다. 바르샤바 주요 대학 캠퍼스 맞은편 크라코프스키에 위치한 이 성당은 폴란드 수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바로크 양식성당이다. 홀리 크로스 교회는 현재 빈센트 드 바울 선교사가 관리하고 있다.
15세기 초에 작은 목조 예배당이 처음 세워졌고 1526년 예배당이 철거되고 새로운 성당이 세워졌다. 1615년 파웨 젬브르주스키에 의해 재단장되고 확장된 이 성당은 성장하는 도시의 요구를 채우기에는 너무 작았다. 처음에는 도시 경계선 바깥에 위치해 있었으며, 17세기에 이르러서는 폴란드의 수도가 된 도시의 남부 교외(prgedmieście)에 있는 주요 성당들 중 하나가 되었다. 1653년 여왕 마리 루이즈 곤자가는 빈센트 드 바울의 프랑스 선교사 프리아들의 명령에 따라 성당을 주었다. 그러나 3년 후 바르샤바는 들루게 때 스웨덴군에 포로로 잡혔다. 약탈당한 성당은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것으로 밝혀졌다.
존 3세 소비스키 왕 때 잔해들이 철거되었고, 새로운 성당을 세우기로 결정되었다. 국민통합을 상징하는 내셔널 제단(Owtarz Ojczyny)에서 Tylman Gamerski에 디자인을 의뢰하여 1700년에 지어졌다. 본관은 1679년에서 1696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주요 디자이너는 폴란드 왕실의 왕실 건축가인 조제프 시몬 벨로티였다. 파사드는 비교적 소박하고 인근 성당의 르네상스 전면을 연상시켰다. 파사드를 둘러싸고 있는 두 개의 탑은 처음에는 사각형으로 잘려져 있었다. 파사드 자체는 폰타나(Fontana)의 아들 야쿠브(Jakub, 1756년)에 의해 새롭게 단장되었고 얀 예르지 플레쉬(Jan Jerzy Plersch)의 조각품으로 장식되었다.
1765년부터 이 교회는 폴란드 왕 스타니스와프 2세 아우구스투스가 가장 많이 참석한 성당 중 하나였다.
19세기 후반에는 교회 내부를 약간 새롭게 단장하였고, 1882년에는 쇼팽의 심장을 담은 단지가 기둥에 담겼다. 몇 십 년 후, 비슷한 항아리가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의 심장과 함께 추가되었다. 1889년 정문으로 통하는 외부 계단이 재건되었고, 비오 베로우스스키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새겨진 조각이 추가되었다. 폴란드의 가장 유명한 화가들의 심장을 담은 항아리 외에도 율리우스 스워와키, 요제프 이그나시 크라스체프스키, 볼레스와프 프루스,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 등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다른 저명한 폴란드인들에 대한 여러 비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