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도비체 성 요한 바오로 2세 생가 박물관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바도비체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20-2005)의 고향이다. 이곳에는 그가 태어나고 18세까지 살았던 집이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있다. 생가 바로 옆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성당은 그가 유아세례와 첫영성체를 받은 곳으로, 교구 성지에 이어 바실리카(교황청으로부터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대성전)로 지정되었다. 생가 박물관과 바실리카의 연간 순례자는 40만여 명으로 집계된다. 이층집을 개조한 박물관에는 교황이 태어난 방과 유품, 폴란드를 비롯한 전 세계의 사목방문 기록물들이 보존 전시되어 있다. 입장권에는 2020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탄생 100주년 기념 엠블럼이 인쇄되어 있었다. 소년 카롤 보이티와, 훗날의 교황이 창밖으로 내다보던 성당 벽면의 해시계에는 폴란드어로 “시간은 흘러가지만 영원이 기다린다”(Czas ucieka, wieczność czeka)는 격언이 써 있다. 어려서 겪은 부모형제의 죽음, 제2차 세계대전, 조국의 공산화로 이어지는 고난 속에서도, 그는 자신이 간직하고 키워온 희망을 온 세상에 선포하며 세계인들에게 평화를 위해 일할 힘을 불어넣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 고난을 겪을지라도 삶의 종착점에는 영원한 천상 행복이 기다린다는 진리를, 교황은 자신의 온 생애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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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생가 옆에 있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성당. 신자들이 성당에 서있을 자리도 모자라 앞마당에서도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② 카롤 보이티와(요한 바오로 2세 교황)가 유아세례를 받은 세례당. ③ 소년 카롤이 거실 창밖으로 바라보던 성당의 해시계. 그의 선종 날짜와 시각인 2005년 4월 2일 (밤) 9시 37분이 새겨졌다. ④ 생가 박물관에 전시된 교황의 여권과 로마 유학 시절의 유품들. ⑤ 생가 박물관 2층에는 사목 방문지에서 담아온 흙이 나라 이름을 적은 유리함에 담겨 보관되어 있다. 분단국인 남한의 유리함만이 어긋난 각도로 놓여 순례자들의 눈길을 붙잡는다.
쳉스토호바 검은 성모 성지
9월 22일 오후에 찾아간 쳉스토호바는 폴란드 최대 순례지이다. 1356년부터 형성된 폴란드 중세 교통의 요충도시 개척자 쳉스토흐의 이름을 따서 쳉스토호바로 불린다. 전국의 90% 철광석을 생산하는 대규모 야금 콤비나트가 위치해있다. 야스나구라 (Jasna Gora 빛의 언덕) 수도원이 위치한 종교도시 폴란드의 영적수도, 기적의 순례지, 구원의 땅 야스나 구라가 세계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故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참배 이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이곳을 내 마음의 고향이라고 표현했다. 야스나고라(빛의 언덕)라 불리는 이곳에는 검은 성모 성화와 성 바오로 은수자회 수도원이 있다.
연간 500만 명이 순례하는 이곳은 폴란드의 호국 성지, 민주화의 발원지로도 유명하다. 제작연대를 특정할 수 없는 이 그림은 1382년 8월 오폴레 공작 브와디스와프 오폴츠치크에 의해 쳉스토호바에 정착했다. 성모화를 실은 마차가 야스나고라에서 움직이지 않자 공작이 헝가리의 수사들을 초청해 이곳에 수도원을 세우고 성모화를 지키게 한 것이다. 성모화의 특징인 오른뺨의 상처는 1430년 후스파의 성화상 파괴 운동이 벌어졌을 때, 후스파가 이곳을 습격해 성모화를 칼로 내리치면서 생겼다고 한다. 화가들의 복원 시도에도 지워지지 않은 상처에 폴란드 민족은 자신들의 고난을 이입하며 용기를 얻었다. 1655년 스웨덴의 침략 전쟁 때 폴란드가 검은 성모의 전구에 힘입어 승리하자, 이듬해 얀 카지미에슈 왕은 검은 성모를 폴란드의 모후요 수호자로 선포했다. 검은 성모는 폴란드의 온갖 시련을 이겨낸 모후요 호국의 상징이자 민중의 벗이다. 모든 고통에서 민중을 보호하느라 얼굴의 상처마저 빛나는 ‘폴란드의 어머니’이다. 검은 성모 주변에는 고통받던 이들이 봉헌한 목발과 묵주, 성물이 사방 가득 걸려 있다.
검은 성모 성화 주변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1년 피격 당시 허리에 둘렀던 피 묻은 파시아와 베네딕토 16세,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해 봉헌한 황금 장미가 장식돼 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즉위 이듬해인 1979년 6월 4일, 교황 자격으로 가진 첫 폴란드 사목방문 때 쳉스토호바 성지 광장에서 미사를 주례하며, 폴란드 민족이 그리스도교 1천 년의 역사를 걸어왔음을 환기했다. 그의 연설은 오랜 식민통치와 세계대전과 공산화로 말미암아 무너진 폴란드인들의 자존감을 일으켜, 연대자유노조(Solidarność)를 비롯한 민주화 운동의 불씨를 댕겼다. 성지 입구 오른편에는 폴란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다 1984년 저수지에 수장된 복자 제르지 포피에워스코 신부(Fr. Jerzy Popiełuszko, 2010년 시복)의 동상이 서 있다. 동유럽 민주화(1989년) 30주년인 올해, 순례에 의미를 더하는 광경이었다.

① 쳉스토호바 검은 성모 성지 전시실. 신자들이 봉헌한 성물, 가톨릭 정치인들이 기증한 기념물, 장엄 미사에 사용된 기물들이 전시돼 있다. ② 성지 전시실에 보존된 중세 필사본. ③ ‘빛의 언덕’이라는 이름을 실감케 하는 일출 무렵의 야스나고라 수도원. ④ 폴란드 민주화 운동 시대의 순교 복자 제르지 신부의 동상. 목 아래부터 온몸이 묶인 채로 발견된 모습을 재현했다. ⑤ 매일 오전 6시에 거행되는 검은 성모화 제막 예식과 새벽 미사. ※ 해당 부분을 어문 저작물, 음향·영상물, 컴퓨터 데이터, 기타 저작물 등에 인용할 때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저작권 사용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저작권 안내 - http://www.cbck.or.kr/Copyright ]
칼바리아 제브지도브스카
폴란드 남부에 있는 가톨릭 성지(聖地)이며, 자연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17세기 초, 미코우아이 제브르도프스키(Mikolaj Zebrzydowski)가 예루살렘의 성지를 본떠 24개의 교회와 수도원 등이 있는 복합 단지를 지은 것이 시초이다. 성지 순례를 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방문하자 점차 규모가 확대되었다. 부활절에는 7일 동안 예수 수난극 행사가 열린다. 예수가 골고타 언덕에서 수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고 부활하는 모습을 재연한다. 이를 보기 위하여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든다. 시내에는 매너리즘 건축물과 바로크 양식의 공원이 있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인공적 요소, 영적인 요소가 결합된 특별한 지역으로, 1999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베사이드 (Bethaida)산악지대의 14개 봉오리를 오르내리며 진행하는 14처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행을 떠올려 볼 수 있는 곳이다. 폴란드내 부활절 행사와 성모승천축일 행사를 가장 크게 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바로크 양식의 주성당과 수도원 주변 견물들을 갖춘 곳으로 눈물을 흘리는 기적이 이뤄졌다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상이 마리아소성당에 안치되어 많은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와기에브니키
크라쿠프 시내에 위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밀레니엄 첫 성인(자비의 사도)으로 선포되신 파우스티나 수녀님이 계시던 곳. 바실리카 대성당, 하느님 자비의 수도회 수녀원, 와기에브니키 수도원 호텔등의 건물로 이루어져있고 수도원 내부 벽에는 바벨성 외벽처럼 기부자의 이름과 도시이름이 적혀있다. 대성당 앞쪽 넓은 잔디밭에 십자가 고난의 길이 있다. 뒤쪽 소성당에는 성인 파우스티나의 유골과 ‘하느님의 자비의 상본’원본이 보관되어 있다.
1925년 바르샤바에 있는 ‘자비의 성모 수도회’ 수녀원에 입회하여 대부분을 폴란드 크라쿠프의 와기에브니키에서 보내시고 주방일, 정원사, 문지기등과 같은 어려운 소임들을 담당, 몸소 자비를 실천하셨다. 1931년 2월 22일 저녁 꿈을 통해 예수님의 환시를 경험하고 그때의 대화내용을 적은 것이 ‘영성일기’ , 그때 본 예수님의 모습을 그린 것이 ‘하느님 자비의 상본’이다. 부활하신 모습으로 손과 발에 못 박힌 표시가 있고 심장에서는 붉은 빛(성체성사)과 옅은 빛(교회)의 두가지 광채가 발산되고 있다. 여러 유사한 그림이 많은데 아래부분에 ‘jezu Ufam Tobie(저를 당신께 맡기나이다)’라는 문구가 있는 것이 원래의 그림이다.
와기에브니키 하느님의 자비 성지
크라쿠프-와기에브니키에는 ‘하느님의 자비’ 신심의 산실인 자비의 성모 수녀회 수녀원이 있다. 쳉스토호바 다음가는 폴란드의 성지인 이곳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기록하고 전한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성녀(1905~1938)가 생활하다 선종했다. 여기에는 2000년 대희년을 맞아 시성된 성녀의 기념성당과 탑, 수녀원과 옛 성당, 묘지 등이 자리잡고 있다.
니에포칼라누프

(위) 콜베 신부가 폴란드에 세운 성모의 마을 (니에포칼라누프)의 기도시간
1927년 10월 바르샤바 근교의 ‘테레신’에 넓은 땅을 후원자로부터 기증받아 잡지의 발행과 출판의 목적으로 콜베신부님에 의하여 설립된 마을 콜베 신부님의 사진과 당시 라디오 방송국 활동에 관한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 있다. 마당에는 故요한 바오로 2세께서 직접 타셨던 방탄차와 승용차가 실제로 기증되어 전시되있다. 1927년 11월 12일 콜베 신부님께서 최초로 미사를 봉헌한 소성당이 있다.
콜베 신부님의 어린시절 마리아께서 흰 왕관과 붉은 왕관 두 개를 들고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이냐?” 라고 물어보실 때 “둘 다 원합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흰 왕관은 순결을, 붉은 왕관은 순교를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