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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3-29 13:53
태국 성지
글쓴이 : (주)점프투어리즘           @          

니콜라스 분커드 킷밤룽 기념 성당
 

복자 킷밤룽 신부가 묻혀 있는 ‘순교 복자 니콜라스 분커드 킷밤룽 기념 성당’은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1시간여 떨어진 나콘빠톰에 자리하고 있다. 나콘빠톰은 매연과 경적 소리로 가득한 방콕과 달리 군데군데 널찍한 논이 들어선 한적한 도시다. 이런 곳에 성당이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우려와 달리 킷밤룽 신부 기념 성당은 거대한 위용을 자랑한다. 육각 지붕과 높이 치솟은 첨탑은 킷밤룽 신부가 태국 교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준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킷밤룽 신부의 생전 모습을 복원한 밀랍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밀랍상 밑에 그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킷밤룽 신부의 유해가 이곳에 안장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킷밤룽 신부의 유해는 순교지인 방꽝(Bang Kwang) 교도소 근처의 방 프랙(Bang praek) 불교사원에 방치됐다. 그의 유해가 절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태국 교회는 유해를 이장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프랑스와의 전쟁 상흔이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태국 교회가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나 태국 교회는 끝까지 킷밤룽 신부의 유해 이장을 요청했고 3개월이 지난 1944년 3월 방콕 주교좌성당인 성모 승천 대성당으로 킷밤룽 신부의 유해를 이장할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왓송콘(Watsongkhon)의 일곱 순교 복자와는 달리 그에게 전구를 바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다. 왓송콘의 순교자들이 태국 사람들에게 일종의 ‘가정을 지키는 수호자’처럼 친근한 이미지를 지녔다면, 킷밤룽 신부는 태국 교회 자체를 지키는 수호성인 같은 이미지가 느껴지기 때문일까. 그만큼 그는 태국 교회에서 가장 큰 어른으로 모셔진다. 그의 상징성을 보여주듯 태국 성당에서는 그의 동상과 유해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순교 복자 니콜라스 신부 성당 보좌인 쿤 쿵(Khun Kung) 신부는 “니콜라스 신부님은 태국 교회의 순교 정신을 상징하는 사제”라며 존경을 표했다.
 

방콕 Assumption Cathedral, 어섬션 대성당

이 성당은 오리엔탈 호텔과 프랑스 대사관 에서 100m 이내에 있으며, 원래 건물은 1809년 프랑스 선교사 파스칼 신부의 요청과 프랑스 건축가의 작업의 결과이다. 라마2세의 통치기간인 1821년 성모마리아의 이름을 따서 성당이름을 Assumption으로 정하고 8월 15일 성모 마리아의 날에 Feast of the Assumption기간 동안 교회에서 기념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 외관은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건물의 내부는 매우 고급스럽고 품위가 있다. 신고전주의와 프랑스 식민지 시대의 장식, 특히 종교와 관련된 프레스코화와 옅은 무늬의 장식이 혼합되어 있다. 내부에는 많은 화려한 장식으로 장식된 높은 천장이 있다. 라틴어로 예수님의 이름 이니셜이 새겨져 있고 별이 장식되어 있다. 대성당의 중요한 부분은 성역 밑의 토굴에 있다., 바티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순교자로 선포된 니콜라스 분 커드 키트 밤룽 신부를 포함한 주교와 선교사들의 유골을 보관하고 있다. 예배당이자 성스러운 의식을 수행하는 것 외에도 대성당의 역할은 2014년 Michael Meechai Kitboonchu추기경이 이끄는 지방 교구장의 교회이며 태국의 가톨릭의 중심이다.

 

방콕 산타크루즈 성당

방콕에 있는 유럽풍의 가톨릭성당으로 포르투갈의 영향이 남아있는 곳이다. 17세기말 방콕에는 많은 포르투갈인이 거주하고있었으며 당시 기록으로 약 방콕인구의 1%를 (약 4000여명)을 차지하고있었다. 미얀마에 의해 멸망한 아유타야 왕조, 그 미얀마를 물리치고 새로이 도읍을 톤부리에 건설한 탁신 왕은 이에 포르투갈인의 감사의 표시로 톤부리의 일부 땅을 그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정하여 주었다. 기록상으로 1769년 산타 크루즈 교회가 건립되었으며, 이 후 라마 3세때 재건축 (1856년)되었고 지금은 톤부리 지역을 대표하는 성당으로 여겨지고있다. 스테인드글라스 조각이 선명하고 아름답다.
 

방콕 Holy Rosary Church

홀리 로사리 교회(Holy Rosary Church)는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지어진 교회다. 초아프라야 강둑을 따라 방콕 차이나타운의 탈라트노이 지역에 있는 아름다운 고딕 로마 가톨릭 교회다. 칼라와 성당으로도 알려진 성 로사리 성당은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 교회 중 하나이다. 1767년 탁신왕이 아유타야 함락 이후 툰부리를 자신의 수도로 세우자, 아유타야의 포르투갈 공동체는 오늘날 방콕의 두 지역에 다시 정착하였다. 일부는 자크 코레 신부의 지도력을 따랐고, 곧 산타크루즈 교회가 세워졌던 쿠디 친으로 알려진 이 지역의 차오프라야 강 서쪽 둑에 정착했다. 프랑스 사절단의 권위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또 다른 파벌은 삼판타웅 구 내의 탈라트 노이로 알려진 지역의 동쪽 제방에 정착했다. 후자는 두 개의 거룩한 상을 가지고 왔다. 하나는 로사리의 성녀였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의 성체였다. 그러나 상주하는 사제들이 없다면 그들은 산타크루즈에서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 1787년에 처음으로 교회가 세워졌다. 그것은 돌로 된 나무 구조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여전히 프랑스 사제들에게 의존해야 했고, 그들은 점차적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1822년 교회는 마침내 교황청과 교감을 맺어 시암의 변절자인 에스프리트 마리 요제프 플로렌스 주교의 권위를 받았다. 그 무렵 포르투갈 사회는 점차 분산되어 가고 있었고, 중국인 이민자들은 곧 교회의 주요 참석자가 되었다. 1838년에 낡은 파손된 건축물을 대체하기 위해 석조 기지에 목재를 새 교회 건물이 지어졌다. 1839년 10월 1일에 성결되었고, 정식으로 로사리 성모에게 바쳐졌다. 1890년까지 이 구조물은 황폐화되었고, 목사 데살레스 신부가 새 건물을 짓기 위해 주선하였다. 건축은 1891년부터 1897년까지 이루어졌고, 새 교회는 1897년 10월에 성결되어 현재 운영 중이다. 현재의 건축은 네오 고딕 양식으로 그 구조물을 대체한 개축이다. 건물 내부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금박을 입힌 천장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복원에 많은 정성이 들였고, 그 결과 1982년 샴 건축가 협회로부터 '잘 보존된 역사적 건축물상'을 받았다.
 

송콘성지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680여km 북동부 이산지역 송콘(Songkhon) 은 가톨릭신자들에게 '살아 생전 꼭 가야할 순례지'로 손꼽히는 태국 가톨릭 성당 최대 성지이며 타레농상대교구의 유일한 순교성지이다. 태국사람들은 이곳을 불교사원처럼 성스러운 장소라서 해서 앞에 왓(Wat)을 붙여 '왓송콘'이라 부르고 있다. 메콩강을 끼고 있는 이 성지는 적벽돌 단층 구조물 안에 전면이 유리로 된 성당과 정원 외벽에 꾸며진 십자가의 길 등 비교적 단조롭게 조성되어 있다. 왓송콘에는 7명의 순교 복자가 모셔져 있다. 필라(Phila, 아녜스, 31)와 캄방(Khambang, 루치아, 23) 수녀, 풋다(Phutta, 아가타, 59), 시퐁(Siphong, 필리피, 33), 부트시(Butsi, 체칠리아, 16), 캄파이(Khamphai, 비비안나, 15), 폰(Phorn, 마리아, 14) 등 7위다. 이들은 1989년 10월 22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복됐다. 이들이 순교하던 당시 태국은 프랑스와 국경 문제로 충돌을 빚고 있었다. 태국은 교회를 ‘프랑스의 간첩’으로 의심해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가톨릭 신자들에게 개종을 강요했다. 이때 송콘의 순교자들 역시 개종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자기 신앙을 지켰다. 복녀 필라 수녀가 경찰서장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보면 그들의 신앙심이 얼마나 깊고 순교를 갈망했는지 알 수 있다. 필라 수녀는 편지에서 “그리스도만이 참된 신앙”이라고 고백하며 “빨리 하느님과 만나고 싶으니 지체하지 말고 우리의 목숨을 빼앗으라는 명령을 수행해 달라”고 서장에게 부탁했다. 결국, 7명의 순교자는 메콩강변 삭신 숲에서 총살형으로 순교했다. 왓송콘을 순례하면 먼저 외부를 둘러싼 거대한 벽과 마주한다. 벽은 이곳이 성스러운 곳임을 상징한다. 벽 안쪽에는 복자들의 순교 당시 모습을 기록한 돌 패널과 십자가의 길 14처가 있다. 성지 가운데에는 ‘태국 순교자 7위의 성모 성당’이 있다. 성당은 정면에서 볼 때 직사각형 모양으로 지어져 있다. 성당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순교자들의 올곧은 신앙심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당 전면을 떠받치고 있는 일곱 기둥은 ‘일곱 순교자’를 뜻한다. 성당 안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쇠사슬을 들고 서 있는 성모 마리아상이다. 성모님이 들고 있는 쇠사슬은 노예 해방을 상징한다. 당시 송콘 지역의 가톨릭 신자들은 대부분이 노예를 비롯한 하층 계급이었다. 이들에게 가톨릭은 신앙이자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했다. 성당 뒤편에는 순교 복자 7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유해는 모두 밀랍으로 처리돼 유리관에 안장돼 있다. 이곳을 찾는 신자들은 이들의 시성을 위해 기도하고, 이들에게 전구를 청하는 기도 쪽지를 복자들의 유해 앞에 두고 간다. 왓송콘 순교성지 주임 위라데즈(Weeradej) 신부는 “한 해에 7000명이 넘는 신자들이 신앙의 증거를 찾아 이곳을 방문한다”며 “아시아순례네트워크 사업을 통해 왓송콘 성지를 방문하는 한국인 순례자들이 늘어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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