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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3-26 17:09
일본 고토섬 성지
글쓴이 : (주)점프투어리즘           @          

도자키 성당

모고토의 관문인 후쿠에 항 근처 아름다운 바닷가에 자리한 도자키 성당은 일본 교회가 신앙의 자유를 되찾은 지 7년만인 1880년 고토열도에 처음 세워진 성당입니다.

도자키 성당에서 유난히 눈에 띠는 것은 스테인드 글라스에 피어있는 동백꽃인데, 로사리오를 의미하는 장미를 본적이 없던 고토 신자들이 고토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동백꽃으로 장미를 대신했다지만,

동백의 단단한 열매는  견고한 신앙심, 꺾이지 않는 의지의 순교자들과 더욱 닮아있는 듯합니다.

무엇 하나 겉으로 드러내지 못했던 신자들은 밥그릇 바닥에 십자가를 새겼고, 낯선 관음보살상을 놓고 동자에는 예수를, 관음보살에는 성모마리아를 투영시킨 마리아 관음이라는 특이한 상징물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도자키성당은 1974년 나가사키현의 문화재 지정을 받았고 1977년부터는 고토 그리스도인의 수난사를 전하는 자료관이 됐습니다.

 

후쿠에 성당
쇼와37년에 대화재가 발생했는데 신축된지 얼마안된 성당의 근처에서 진화가 되서 하느님의 보호라고 하였다고한다. 부흥의 상징이자 시내성당의 중심적 역할.

 

미즈노우라 성당

미즈노우라성당의 역사는 18세기 말 오오무라한에서 이주하여 온 잠복 키리시탄 가운데 5명의 남자와 그의 아내들이 주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들은 불교도를 가장하고 몰래 그리스도교를 믿었습니다.

1866년 무렵 카미고또-의 신자가 미즈노우라에 와서 나가사키오오우라에 키리시탄의 성당이 서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 그 해 118일 미즈노우라의 쵸오가다(신자 대표)등 세 사람이 나가사키에 가서 프치쟌 주교를 면접하고 기적패랑 십자가를 얻어갖고섬에 돌아왔습니다.

 

18681225일 미즈노우라의 키리시탄들이 쵸오가다의 집에 모여 기도 드리고 있는데 관리들이 덮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4~5일 후30여명의 남자들이 잡혀서 임시로 만든 옥사인 쵸오가다의 집에 갇혔습니다. 태반의 신자들은 1869년 옥에서 풀려났지만 주요한 8명은 2년 넘게 옥에 갇혀 있었습니다.미즈노우라 신자들은 금교의 방이 철거되고 7년 후인 1880년에 미즈노우라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위에 최초의 성당을 건립하였습니다.

 

6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성당은 세차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노후화되어 재건축하기에 이르렀으며 현재의 미즈노우라 성당은 1938년 명장 테츠가와요스케의 설계 시공으로 당시 운젠에 세울 예정이었던 성당이 사정에 의하여 취소를 하게 되어 그 자재를 그대로 매수하여 건축하였습니다. 승천하신 성모님께 봉헌된 백악의 우미한 성당입니다

 

 

미이라쿠 성당

미이라쿠 성당은 외벽 정면의 도기로 그려진 큰 모자이크성화(테마는 여러성인)와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움이 대단히 인상적인 성당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이 고장 미이라쿠 출신의 독지가가 비용을 부담하고 이 고장의 봉사자 그룹에 의하여 수년 걸려서 제작되어 2005년에 완성한 것입니다.  이 지역의 키리시탄 역사는 177270명의 농민이 후치노모토에, 다음해인 1773년에도 많은 이가 미이라쿠에 이주하여 오는데서 시작되었고 그 3년 후에는 78명이 후치노모토에 주거를 정하고 있습니다.  1839년에는 나가사키 우라카미의 2번째 박해에서 방면된 신자 일부가 미이라쿠(다케마을)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1868년 히사까섬에서 시작된 키리시탄 박해는 미이라쿠에도 미쳐서 신자들은 탄압을 참고 이겨내어 배교자나 사망자를 내는 일 없이 태반이 1개월 정도에서 옥에서 풀려났고 일부 신자는 투옥된 채로 있다가 1871년이 되어 전원이 방면되었습니다.

 

1880년 현재의 부지에 고딕양식으로 목조의 성당을 지었으며, 그 후 세월이 경과하면서 필요에 따라 대수리를 하였고 신자의 증가에 대응하기 위하여 증개축을 거듭하였지만 건축에서 90년후인 1970

 

흰개미에 의한 피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체하게 되었습니다. 해체 다음해인 1971년에 새 성당을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가이쓰 성당

카이즈 성당의 역사는 오오무라한에서 미이라쿠의 후루다라던가 타마노우라쵸 돈도마리로 이주하여 온 잠복키리시탄이 그 후 타케야마 마을로 다시 이주하여 온데서 시작되었습니다.

19세기 중반 하사까섬에서의 박해가 미이라쿠에 미치면서 카이즈의 신자들도 하마노아제의 지방관리의 집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투옥되었습니다. 금교의 방 철거에서 반세기후인 1924년 당시 40호의 신자들에 의하여 목조의 현교회가 건립되어 사도 성 요한에게 봉헌되었습니다. 카이즈교회는 다케(현재 미이라쿠) 소교구의 공소로 발족되었는데 당시의 신자 대부분은 타케야마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현재의 성당이 건립되기 전에는 같은 부지에 10평이 좀 못되는 옛 성당이 있었는데 대단히 좁고 사제가 순회할 때에는 신자가 성당 밖에까지 넘쳐났다고 합니다.

 

1952년 다케소교구에서 독립하여 카이즈소교구로 되었으며 현 성당은 1962년 건물의 노후화 때문에 대폭적인 증개축이 이루어지면서 삼각지붕의 작은 첨탑이 새롭게 덧붙여진 것입니다. 창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서 쏟아져 들어오는 빨강, 파랑, 초록의 선명한 빛은 소박하고 따스함이 느껴지는 성당 공간을 예술적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쥐 죽은 듯 고요한 성당안의 제단에는 구색 맞춘 계절의 꽃이 장식되고 있어 엄숙한 가운데에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온을 느끼게 합니다.

구스하라성당 & 구스하라 옥사터
소토메 기리시탄 최초의 한공인 이주지
미즈노라에서 박해가 일어난 후 이 지구에서도 신도들이 박해를 당하고 신자33명이 감옥에 갇혔다. 그 때 그 감옥을 복원해놓은 것이다. 구스하라 지구는 소토메로부터 농민 일부가 처음으로 이주한 지역 중 하나이다.

 
이모치우라 천주당 및 루르드 일본 최초의 루르드

프랑스 루르드의 기적의 샘물을 부어넣어 프랑스의 루르드성모발현지 성모동굴 모양을 본떠 일본 최초의 루르드를 만든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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