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소개

해외성지 국내성지
작성일 : 21-04-08 17:04
대전 교구 4
글쓴이 : (주)점프투어리즘           @          

지석리

부여 지석리는 성 손선지 베드로와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가 태어난 고향이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 치명한 두 성인의 유해는 현재 천호 성지에 묻혀 있다. 두 순교자는 1984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지석리에는 손선지 성인의 후손들이 살고 있었는데,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손선지 성인의 시성비라도 세워 달라며 홍산 성당에 밭을 기증했다고 한다. 홍산 성당에서는 두 성인의 생가터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자 동네 땅 일부를 매입해 1988년 두 성인의 출생 기념비와 50여명 정도가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야외제대와 기념비 안내문을 세웠다.

 

진산 성지

충청남도 금산군에 속해있는 진산 성지는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참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며,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신주(神主)를 불사르고 유교식 제사를 거부한 ‘진산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1791년 음력 5월 윤지충은 어머니가 사망하자 유교식 제사 대신 천주교 예절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이는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유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사회 안에서 패륜의 행위로 받아들여졌고, 친척과 이웃들의 고발로 인해 윤지충과 권상연은 체포되어 그해 12월 8일(음력 11월 13일) 전주 남문 밖(현재 전동 성당 부근)에서 참수되어 순교했다.

한국교회 최초의 순교자들이 성장한 곳에 위치한 지방리 공소는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 이후 신자들의 활동이 잠시 주춤하였으나, 다른 지역에 흩어져 살다 피난 온 신자들을 중심으로 재개되었다. 순교와 오랜 믿음의 전통을 지닌 지방리 공소는 1963년 행정개편으로 전라북도에서 충청남도로 편입되었고, 1980년 전주교구에서 대전교구로 이관되었다. 그리고 2009년 공소에서 성지성당으로 승격되었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청양 다락골 성지

청양 다락골 성지는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와 그의 부친인 최경환 성인이 탄생한 유서 깊은 교우촌이자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이 줄지어 자리한 곳이다. 마을 뒷산 양지바른 산등성이에 무명 순교자들의 묘소와 묘비들이 여러 줄로 서 있는데 누구의 무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홍주 감영에서 순교한 교우들의 시신을 밤을 틈타 엄중한 감시를 뚫고 빼내어 최씨 종산인 이곳에 안장했다고 구전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다락골에 천주교가 전래된 것은 1791년 신해박해의 모진 서슬에 최양업 신부의 조부(祖父)인 최인주와 그의 어머니가 피난을 오면서 시작되었다. 모자는 공토를 개간해 살림을 이어 갔는데 이때 그들이 개간했던 땅이 새터(新垈)로 점점 이웃이 모여옴에 따라 새로운 교우촌을 이루게 되었다. 최인주 슬하의 3형제 가운데 셋째가 최경환 성인으로, 그는 1821년 한국에서 두 번째 사제가 된 최양업을 6형제 중 장남으로 얻었다. 이들은 박해 시대에 드러내놓고 신앙생활을 하기에 어려움을 겪던 중 신자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서울로 이사를 하였고, 그 후 다락골의 교우촌 새터 마을 교우들은 대화재의 참화 속에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합덕 성당

합덕 성당은 충청도 지역 교회의 중심인 내포 지방 한가운데 자리한 유서 깊은 성당으로 1890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설립된 양촌 성당을 모태로 한다. 1899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합덕 본당으로, 1961년 신합덕 본당을 분가하면서 구합덕 본당으로, 1997년 다시 본래의 이름인 합덕 본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두 개의 첨탑을 지닌 붉은 벽돌 건물인 합덕 성당은 사방 어디서든 그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내포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일깨워주고 있다. 또한 성당 구내에는 6.25 때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순교한 페랭 백문필 신부와 그와 함께 잡혀가 순교한 윤복수 라이문도 총회장과 송상원 요한 복사의 순교비와 가묘가 조성되어 있다. 합덕 성당은 1998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해미 순교성지

1790년에서 1890년에 이르는 100여 년 동안 해미 진영은 수많은 천주교인을 국사범으로 처형했는데, 공식적인 박해 외에도 끊임없이 내포 지방의 교우들을 잡아들여 죽였다. 이 기간 동안 해미 진영의 옥사에는 늘 잡혀 온 교우들로 가득했고, 그들은 매일 서문 밖으로 끌려나가 교수형, 참수, 몰매질,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자리개질 등으로 죽어갔다. 특히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시체 처리를 간편하게 하기 위해 생매장이나 수장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순교한 이들의 정확한 신원과 행적조차 알려지지 않았고, 단지 수천으로 추정되는 순교자들 중 70여 명만의 이름과 출신지가 남아 있다. 이들이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생매장과 수장으로 숨져 간 진둠벙 주변에는 십자가의 길과 노천 성당 등이 조성되었다. 순교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해미읍성에는 동헌과 교우들을 가두었던 옥사가 복원되었고, 그 앞에는 고문대로 쓰던 호야나무가 남아 있다. 서문 밖 순교성지에는 1956년 서산 성당으로 이전하여 보존하던 자리개 돌다리가 1986년 원위치를 찾아 복원되었다가 2009년 1월 다시 해미 성지 내로 옮겨 보존하고 있고, 1989년에 건립한 순교현양비가 있다. 그리고 1935년 서산 본당 범 베드로 신부에 의해 순교자들의 유해와 유품들이 발굴되어 30리 밖 상홍리 공소 뒷산에 임시 안장되었다가 1995년 원래의 순교터인 해미 순교탑 앞으로 이장되었다.

2014년 8월 17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참가를 위해 해미 성지를 방문하여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을 갖고 해미읍성에서 폐막미사를 집전했다.

 

홍주 순교성지

내포 지역의 중심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던 홍성읍 한복판에 자리한 홍주성은 그 전체가 순교의 현장이다. 홍성읍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이 조양문인데, 홍주성을 드나들던 동서남북 4개 문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동문으로 박해 당시 붙잡혀 온 교우들이 이 문을 통해 성 안으로 들어갔다가 시체가 되어 성벽 밖으로 던져졌다. 현재 홍주성의 옛 모습 중에서 성벽과 일부 건물이 복원되었고, 원형 복원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교회의 순교록과 관변기록 등을 통해 확인된 홍성 순교자는 모두 212명에 달한다. 그러나 무명 순교자를 감안하면 실제 순교자는 1000여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2004년 순교성지 발굴이 본격화된 후 2008년 3월 홍성 본당은 홍성군과 함께 순교비를 세웠습니다. 순교비가 세워진 곳은 홍주읍성 북문 밖을 흐르는 월계천과 조양문 밖을 흐르는 홍성천이 만나는 합수머리 지점으로 1868년 생매장으로 순교한 이들을 비롯해 박해시대 홍주읍성 안에서 옥사나 교수형으로 순교한 이들의 시신이 매장된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이다.

 

황무실 성지

황무실은 당진시와 예산군의 경계에 위치한 얕은 구릉 지대에 있는 유서 깊은 교우촌으로, 1791년 신해박해 이전부터 1868년 무진박해까지 신앙공동체가 존속했던 곳이다. 또한 신리 교우촌과 더불어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거주하며 사목활동을 한 내포교회의 중심지다. 그러나 병인박해로 철저히 교우촌이 파괴되고, 이웃한 면천 출신과 합쳐 70여 명에 이르는 순교자가 탄생했지만, 서서히 역사 속에 묻혔다.

그러던 중 신합덕 성당 신자들이 황무실에서 사목하다 선종한 메스트르 신부와 랑드르 신부의 묘소를 찾아 솔뫼 성지처럼 황무실을 선조들의 고향으로 생각해 자주 순례하며 선교사제와 교우들의 묘지를 보살폈다. 1970년 4월 30일 메스트르 신부와 랑드르 신부의 묘를 합덕 성당으로 이장하면서 황무실은 교우들의 관심에서 다시 멀어지고 돌보지 않는 순교사적지가 되었다.

황무실은 2014년 8월 16일 이곳 출신 이보현 프란치스코 순교자의 시복을 계기로 성지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신합덕 본당은 해미에서 순교한 이보현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옛 황무실 교우촌 부지를 매입해 순교자 현양비를 세우고 성지 개발을 본격화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황무실 성지 및 순교자 현양비 축복 미사를 봉헌했다.

 

황새바위 순교성지

공주는 한국 천주교회가 안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진 거룩한 땅이요 충남 지역 신앙의 요람이다. 공주에는 일찍부터 충청도를 관할하는 관찰사와 공주 감영이 있었고, 충청도 각지에서 잡혀 온 천주교인들은 공주 감영으로 이송돼 배교를 강요당하고 이를 거부할 때에는 ‘황새바위’라고 불리는 곳에서 여지없이 사형에 처해졌다. 공주 황새바위에서 처형된 순교자들의 출신지는 충청도, 전라도, 경기도, 한양 등 매우 다양하며, 그 중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만도 248명에 이른다.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순교자로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손자선 성인과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내포 지방의 사도’ 이존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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