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교구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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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점프투어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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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석리 부여 지석리는 성 손선지 베드로와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가 태어난 고향이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전주 숲정이에서 참수 치명한 두 성인의 유해는 현재 천호 성지에 묻혀 있다. 두 순교자는 1984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당시 지석리에는 손선지 성인의 후손들이 살고 있었는데, 가난한 생활 가운데서도 손선지 성인의 시성비라도 세워 달라며 홍산 성당에 밭을 기증했다고 한다. 홍산 성당에서는 두 성인의 생가터를 정확히 확인할 수 없자 동네 땅 일부를 매입해 1988년 두 성인의 출생 기념비와 50여명 정도가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야외제대와 기념비 안내문을 세웠다. 진산 성지 충청남도 금산군에 속해있는 진산 성지는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참수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가 태어나고 성장한 곳이며,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신주(神主)를 불사르고 유교식 제사를 거부한 ‘진산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1791년 음력 5월 윤지충은 어머니가 사망하자 유교식 제사 대신 천주교 예절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이는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일은 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유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사회 안에서 패륜의 행위로 받아들여졌고, 친척과 이웃들의 고발로 인해 윤지충과 권상연은 체포되어 그해 12월 8일(음력 11월 13일) 전주 남문 밖(현재 전동 성당 부근)에서 참수되어 순교했다. 청양 다락골 성지 청양 다락골 성지는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와 그의 부친인 최경환 성인이 탄생한 유서 깊은 교우촌이자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이 줄지어 자리한 곳이다. 마을 뒷산 양지바른 산등성이에 무명 순교자들의 묘소와 묘비들이 여러 줄로 서 있는데 누구의 무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홍주 감영에서 순교한 교우들의 시신을 밤을 틈타 엄중한 감시를 뚫고 빼내어 최씨 종산인 이곳에 안장했다고 구전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합덕 성당 합덕 성당은 충청도 지역 교회의 중심인 내포 지방 한가운데 자리한 유서 깊은 성당으로 1890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설립된 양촌 성당을 모태로 한다. 1899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합덕 본당으로, 1961년 신합덕 본당을 분가하면서 구합덕 본당으로, 1997년 다시 본래의 이름인 합덕 본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두 개의 첨탑을 지닌 붉은 벽돌 건물인 합덕 성당은 사방 어디서든 그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내포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일깨워주고 있다. 또한 성당 구내에는 6.25 때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순교한 페랭 백문필 신부와 그와 함께 잡혀가 순교한 윤복수 라이문도 총회장과 송상원 요한 복사의 순교비와 가묘가 조성되어 있다. 합덕 성당은 1998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해미 순교성지 1790년에서 1890년에 이르는 100여 년 동안 해미 진영은 수많은 천주교인을 국사범으로 처형했는데, 공식적인 박해 외에도 끊임없이 내포 지방의 교우들을 잡아들여 죽였다. 이 기간 동안 해미 진영의 옥사에는 늘 잡혀 온 교우들로 가득했고, 그들은 매일 서문 밖으로 끌려나가 교수형, 참수, 몰매질,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자리개질 등으로 죽어갔다. 특히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시체 처리를 간편하게 하기 위해 생매장이나 수장을 하기도 했다. 홍주 순교성지 내포 지역의 중심이자 군사적 요충지였던 홍성읍 한복판에 자리한 홍주성은 그 전체가 순교의 현장이다. 홍성읍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이 조양문인데, 홍주성을 드나들던 동서남북 4개 문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동문으로 박해 당시 붙잡혀 온 교우들이 이 문을 통해 성 안으로 들어갔다가 시체가 되어 성벽 밖으로 던져졌다. 현재 홍주성의 옛 모습 중에서 성벽과 일부 건물이 복원되었고, 원형 복원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황무실 성지 황무실은 당진시와 예산군의 경계에 위치한 얕은 구릉 지대에 있는 유서 깊은 교우촌으로, 1791년 신해박해 이전부터 1868년 무진박해까지 신앙공동체가 존속했던 곳이다. 또한 신리 교우촌과 더불어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거주하며 사목활동을 한 내포교회의 중심지다. 그러나 병인박해로 철저히 교우촌이 파괴되고, 이웃한 면천 출신과 합쳐 70여 명에 이르는 순교자가 탄생했지만, 서서히 역사 속에 묻혔다. 황새바위 순교성지 공주는 한국 천주교회가 안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뿌려진 거룩한 땅이요 충남 지역 신앙의 요람이다. 공주에는 일찍부터 충청도를 관할하는 관찰사와 공주 감영이 있었고, 충청도 각지에서 잡혀 온 천주교인들은 공주 감영으로 이송돼 배교를 강요당하고 이를 거부할 때에는 ‘황새바위’라고 불리는 곳에서 여지없이 사형에 처해졌다. 공주 황새바위에서 처형된 순교자들의 출신지는 충청도, 전라도, 경기도, 한양 등 매우 다양하며, 그 중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만도 248명에 이른다.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순교자로는 병인박해 때 순교한 손자선 성인과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내포 지방의 사도’ 이존창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