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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4-08 11:34
전주교구1
글쓴이 : (주)점프투어리즘           @          

개갑(최여겸 마티아 순교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고을과 영광군 법성포를 연결하는 중간지점인 공음면 석교리에 위치한 개갑 장터는 조선시대 각종 산물의 집산지로 매우 번창했던 시장이었다. 일제에 의해 폐쇄되어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이곳은 또한 무장 출신으로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최여겸 마티아의 순교 터이기도 하다. 윤지충과 이존창에게 교리를 배워 신자가 된 그는 고향 무장으로 돌아와 복음을 전하는데 힘썼다. 신유박해 때 한산의 처가로 피신하였다가 체포된 그는 무장과 전주 감영, 한양 포도청과 형조에서 굳건히 신앙을 증언해 마침내 사형선고를 받고 고향으로 이송되어 개갑 장터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고창군은 개갑 장터의 이런 역사적 · 문화적 가치를 고려해 2004년 향토문화유적 제1호로 지정하고, 전주교구 고창 본당과 함께 이곳을 가톨릭 성지로 조성하고 인근 유적지와 연계해 개발하기로 결정하였다. 2009년부터 본격적인 성역화 작업에 들어가 순교 현양탑과 야외제대, 십자가의 길 등을 조성한 후 2013년 9월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의 주례로 개갑 최여겸 마티아 순교성지 축복식을 가졌다. 그리고 2014년 8월 16일 최여겸 마티아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고산성당

고산 성당은 1891년 설립된 되재 성당을 모태로 하는 유서 깊은 교우촌 성당이다. 되재 성당은 한수 이남의 첫 성당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성당으로 건립되었다. 그러나 1942년 공소였던 수청이 본당이 되면서 오히려 수청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 때 전소되었다. 1954년 임시로 공소건물을 지었으나 1958년 본당 소재지가 수청에서 다시 고산으로 옮겨가면서 되재 성당은 고산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현 고산 성당은 본당 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1994년 한옥과 바실리카 형식을 절충한 건물로 장방형에 종탑이 있는 독특한 구조로 건립되었다. ‘하늘과 땅의 만남’을 주제로 한 제대화를 통해 무명 순교자의 피와 땀이 하나로 어우러진 신앙고백을 표현하고 있다. 되재 성당 또한 2004년 7월 30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되면서 전주교구와 완주군의 복원 사업을 통해 2009년 10월 24일 옛 모습대로 복원하여 축복식을 가졌다. 되재 성당이 건립되던 해인 1894년을 본당 봉헌일로 지내는 고산 성당은 2014년 120주년을 기념해 교육관을 신축하였다.

 

나바위

성 김대건 신부가 첫 발을 내디딘 축복의 땅 나바위는 한국의 첫 방인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조국에 입국하며 첫발을 내디딘 축복의 땅이다. 1845년 8월 17일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는 그 해 8월 31일 11명의 교우들과 함께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를 모시고 작은 목선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길에 올라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 끝에 10월 12일 강경에서 조금 떨어진 황산포 나바위 화산 언저리에 닻을 내렸다.

화산 성당으로도 불리던 나바위 성당은 1897년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베르모렐 신부가 1907년에 완성했다. 설계는 명동 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공사는 중국인들이 맡았으며 건축양식은 한국인의 정서에 맞게 한옥 형태를 취했다. 그 뒤 1916-1917년에 흙벽은 양식 벽돌로, 기존 종탑은 헐고 입구에 고딕식 벽돌조 종탑을 세웠으며, 외부 마루는 회랑으로 바꿨다. 1922년 회랑 기둥 밑 부분을 석조로 개조했다. 한국의 전통양식과 서양의 건축양식이 혼합된 나바위 성당은 1987년 사제관과 함께 사적 제318호로 지정되었다.

성당 뒷산에는 대구교구장 드망즈 주교가 피정을 하던 망금정이 있고, 그 옆 너럭바위 위에는 1955년 화강석으로 만들어 세운 김대건 신부 순교비가 있다. 성당 내부에는 김대건 신부의 성해 일부가 모셔져 있고, 제대와 각종 성물들은 중국 남경 성 라자로 수도원에서 제작해서 성당 건축 당시 들여와 조립 또는 설치된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대승리(전동 성당 발상지)

천호 성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대승리(현 신원리)는 전주 지역 선교의 요람인 전동 성당이 세워지기 전 복음의 씨앗이 움튼 곳이다. 전동 성당을 건립하기 전 파리 외방전교회의 보두네 신부는 1889년 봄부터 1891년 6월 23일까지 2년여 간 이곳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전동 성당은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아 1990년 6월 현 부지를 매입해 다음해 12월 8일 ‘전주 전동 천주교회 발상지’라 새긴 기념비를 세웠다. 비문에는 이곳 대승리의 역사와 부지를 매입하게 된 경위가 간단하게 적혀 있다.

 

되재성당

복원된 한수 이남 첫 성당이자 최초의 한옥성당 되재 본당은 1891년 한수 이남의 첫 본당으로 설립된 유서 깊은 교우촌 본당으로 1894년 성당 건립을 시작해 이듬해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성당을 완공했다. 1942년 되재 본당 공소였던 수청이 본당이 되면서 오히려 수청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고, 1950년 한국전쟁 때 전소되었다. 1954년 임시로 공소건물을 지었으나 1958년 본당 소재지가 수청에서 다시 고산으로 옮겨가면서 되재 성당은 고산 본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

현 고산 성당은 본당 봉헌 100주년을 기념해 1994년 한옥과 바실리카 형식을 절충한 건물로 장방형에 종탑이 있는 독특한 구조로 건립되었다. 되재 성당 또한 2004년 7월 30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19호로 지정되면서 전주교구와 완주군의 복원 사업을 통해 2009년 10월 24일 옛 모습대로 복원하여 축복식을 가졌다. 되재 성당 뒷산에는 본당이 설립되기 전 고산 지역에서 사목하다 열병으로 선종한 조스 신부와 라푸르카드 신부의 묘가 있다.

 

서천교(조윤호 요셉 순교지)

18세의 나이에 부친 조화서 성인과 함께 한 순교의 길 서천교는 조화서 베드로 성인의 아들인 조윤호 요셉 성인이 18세의 젊은 나이에 순교한 곳이다. 태중 교우로 태어나 돈독한 신앙생활을 하던 중 병인박해 때 전주 인근의 교우촌인 성지동에서 체포되어 전주 감영에서 부친과 함께 혹독한 형벌을 받으면서도 서로 위로하며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 같은 날 부자(父子)를 처형하지 않는 관례에 따라 아버지에 뒤이어 1866년 12월 23일 서천교 밑에서 처형되었다. 처형 방법은 서천교 밑에서 빌어먹던 거지들에게 성인의 목을 감은 끈을 서로 조르게 하는 참혹한 것이었다. 전주교구는 2006년 5월 성인의 순교터에 순교 기념 모자이크 벽화를 설치했다.

 

수류 성당

100년 이상 교우촌 명성 이어온 성소의 못자리 수류 성당은 전동 성당과 함께 1889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본당으로 1895년 9월까지 모악산 깊은 골짜기의 배재마을에 자리 잡았다가 그해 10월 수류에 부지를 매입해 평야지대로 나왔다. 동학혁명이 막 끝난 뒤라 성당이 들어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주민들은 떠나고, 각처의 신자들이 이주해와 주민 모두가 신자인 교우촌을 이뤘다. 수류는 지금도 교우촌 명맥을 유지해 마을 주민 대부분이 신자이며, 성소의 못자리로서 많은 사제를 배출했다.

1907년 건립한 목조 성당이 1950년 인민군에 의해 전소되고 50여 명의 신자들이 순교하는 아픔을 겪은 후, 1959년 신자들이 손수 벽돌을 만들어 현재의 성당을 지었다. 1980년대 이후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수류 성당은 노령화됐지만 이제는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2000년을 전후해 조성한 야영장과 수영장을 중심으로 주일학교를 비롯한 청소년들의 여름 수련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2003년 개봉된 영화 ‘보리울의 여름’ 촬영지로 알려진 후 수류를 찾는 외부인도 부쩍 늘었다.

2009년 전라북도 김제시의 모악산 권역 종합개발 지역에 포함돼 야영장과 수영장, 교육관 등을 새롭게 보수한 수류 성당은 산촌생태마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2010년 7월 수류청소년야영장 내에 산촌체험관을 건립해 축복식을 가졌다. 산촌체험관의 건립으로 수류청소년야영장은 수영장과 숙박시설을 갖춘 청소년 수련시설로 거듭났고, 숙박 문제로 순례에 어려움을 겪던 ‘아름다운 순례길’ 이용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풍남문

풍남문은 한국 최초의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 그리고 호남의 사도 유항검과 초대 전주 지방 교회의 지도급 인물들이 순교한 곳이다. 호남의 사도 유항검과 그의 동료들이 복음 전파에 온 힘을 쏟고 있던 1790년경 조선의 천주교인들에게는 처음으로 큰 시련이 닥쳐왔다. 천주교의 전례와 유교 의식간의 충돌이라 할 수 있는 제사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1790년 두 번째로 북경에 파견된 윤유일은 조상 제사 금지라는 회신을 갖고 왔고, 이로부터 소위 ‘진산 사건’으로 알려진 한국 교회 최초의 순교사가 시작되었다.

1791년(신해년) 여름, 진산에 살던 진사 윤지충 바오로는 모친상을 당하자 외종사촌인 권상연 야고보와 상의하고 모친의 유언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유교식 장례와 제사를 폐하고 신주를 불태웠다. 그 후 전통 사상을 거스르는 이 행위는 천주교 박해의 구실이 되었고, 그해 12월 8일(음력 11월 13일) 윤지충과 권상연이 남문 밖으로 끌려나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그 후 1914년 외형공사를 마친 전동 성당을 지을 때 일제가 신작로를 내기 위해 풍남문 성벽을 헐어낸 흙과 돌을 가져다 성당의 주춧돌로 사용했다. 윤지충과 권상연, 유항검은 모두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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